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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를' 위한 사회생활을 하기로 해

어쨋든 직장인

by 또또언니 2020. 5. 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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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모 사원


문득, 올해로 사회생활 몇년차 인지 세어봤다. 날짜계산기가 정확하게 만 12년이란다.

재수도 안하고, 휴학도 안쓰고,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해서 아주 직진으로만 달려온 시간.

 

바쁘게 사는게 미덕인 줄 알았고

성실한 게 직장인 최고 덕목인 줄 알고 연차도 다 못썼다.

철저한 갑-을, 상-하 관계 속에서 내말 한마디 못하다가

내 돈 다 내가면서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건

정말 회사밖에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장사를 하셨다. 수완이 좋으셔서 돈을 꽤 벌었다.

IMF가 지나고 나서 빌트인 이라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들어오고,

저가 가구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우리 가구점은 문을 닫았다.

빚을 져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가계는 불안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집 방문은 모두 닫혀있는 그런 날들을 보내며

돈벌이가 불안정한 개인사업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따박따박 주는 월급을 받기 위해 매일 새벽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첫 직장에서 두 번째 상사였던 M은 임원 회의에 참가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는 분이었다.

법인카드를 한도 가까이 써야만 인정받던 때라

매달 말이면 그분의 한 달치 영수증을 정리하며 나는 탄복했다. 

그 당시 M의 연차는 나보다 5년 정도 더 나갔을 거다.

 

시간은 조금씩 분명하게 자기 길을 갔고, 

제로에서 시작한 내 사회생활이 12cm 만큼 올라왔다. 

시간의 두께만큼 능력도, 지위도, 통장도 두툼해질거라 믿으며 뒤 돌아보았을 때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황망한 얼굴로 

출근시간 임박한 파란 보행자 신호등 앞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내가 기대한 사회생활, 회사생활이 무엇인지 나조차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무조건 직장인을 꿈꾸던 여고시절의 내 갈급함은 안정적인 삶이었다.

과연 회사가 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곳인가? 

언제까지 지원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불안한 현대인은 수험생, 취업준비생과 같은 마음으로

미래 진로를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다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삽니다


회사에서 주로 글을 쓴다.

보도자료를 쓰고, 브로셔에는 소개글을 쓰고, 대신해서 기고문도 쓴다.

홍보영상 시나리오를 쓰고, 행사 사회자의 대본도 쓴다. 

보고서와 사업계획, 과업지시서와 같은 딱딱한 글들도 쓰고, SNS가 유행하자 어울리지도 않는 홍보글도 썼다. 

 

글재주가 없는 나는 어쩌다가 이런 업을 만나게 되었나.

시간을 거슬러 내 돌잡이는 '펜'이 었다는 엄마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말씀으론 용한 점쟁이가 집안에 글쟁이가 생길거라 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시다 반 친구들 앞에서

내 사생활을 낭독하시고는 이 정도는 써야 한다고 했었다.

이러한 인연의 끈(?)이 나는 회사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의 길로 인도했던 걸까.

 

그 동안 홍보, 마케팅, 기획, 컨벤션 분야에서 조금씩 경험한 일들,

글로 하나 둘 정리해볼까 한다.

회사를 위한 게 아닌 나를 위한 기록을 하다보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을 믿으면서.

어디어디 홍보팀 아무개 입니다 말고,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라는 말로 나를 소개할 수 있다면? 사회생활 몇 년차가 뭐 그리 중요할까.

 

한밤에 '야너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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